가톨릭성가 1번. 나는 믿나이다
가톨릭 성가 1번 ‘나는 믿나이다’는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은 대표적인 성가로
특히 세례와 관계된 예절에서 많이 사용되는 곡 중 하나다. 그러나 사실 이 성가가 만들어진 본래 의도는
성체성사와 더욱 깊은 관계가 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선율과 가사가 하나의 쌍을 이루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만들어져 이리저리 조합되면서 대중 찬미가로 발전했다. 그래서 노랫말에만 제목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와 별도로 자리
잡고 있던 선율에도 각각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게 특징이다.
이 성가의 본래 외국 성가 제목은 ‘Jesus, my Lord, my God, my all (예수님, 내
주님, 나의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이었다. 이 선율의 타이틀은
‘Sweet Sacrament’, 즉 ‘감미로운 성사’ 혹은 ‘사랑의 성사’였다.
현행 성가책에 이 성가를 작곡한 이로 등장하는 알버트
게레온 슈타인(Albert Gereon Stein, 1809~1881)은 독일 쾰른 출신으로 1833년에 사제품을 받고 여러 본당에서 사목을 하던 교회음악가로 여러 성가책을 펴낸 이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성가가 실린 외국 성가집에는 작곡자가
이 사람으로 나오지 않고, 「로마 가톨릭 소성가집」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 성가집이 출판된 해는 1826년. 이때 슈타인은 17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1893년에
나온 「일반 독일인 전기」에 수록된 슈타인의 저서 목록에도 이 성가집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성가가 과연 그의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956년 나온 「정선 가톨릭 성가집」에는 단순히 코랄(합창곡)이라고만 표기돼 있고, 1965년에 나온 「성공회 성가집」에는 작곡
미상으로 독일의 트리어(Trier) 지방에서 1872년에
나온 선율이라고만 소개하는 것을 보면 슈타인이 이 성가 작곡자라고 할 수 없다.
이 성가의 원래 가사를 쓴 이는 영국의 프레드릭
파버(Frederick W. Faber, 1814~1863)로 가톨릭 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 원문
가사를 쓴 사람이다. 그는 성공회 사제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성공회 신부가 됐으나 1845년 당시 영국에서 벌어지던 ‘옥스퍼드 운동’의 주역인 뉴먼 추기경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후
그는 새롭게 태동한 영국 가톨릭 교회 대중들을 위한 성가가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많은 성가 가사를 썼는데,
4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150여 편을 썼다.
영어로 된 노랫말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나는 믿나이다’ 가사는 요한복음
20장 24-29절에 등장하는 토마스의 고백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는 자신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믿으라는 예수님 말씀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해후하며 느꼈던 그 감격스러움이 이 성가에
그대로 녹아 있다. 원문 노랫말의 1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 내
주님, 내 하느님, 내 모든 것! 어찌 제가 온전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 어찌 우리의 희망과 생각을 뛰어넘는 이 놀라운 선물을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성사여! 저희가 당신을 공경합니다! 오, 저희가 당신을 더욱더 사랑하게 하소서!”
이처럼 이 성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충만한
기쁨, 감격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미사 중에 다시 만나는 성체 안의 예수님, 그것에 참여하는 감격을 표현한 성가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10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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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가 1 번 "나는 믿나이다 “ (Credo)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숙고하고 추구하는 것은 우리 인생 여정의 궁극적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가톨릭 성가 1번 “나는 믿나이다”를 이달의 성가로 선정하였습니다.
내림 마장조에 3/4박자 리듬인 이 성가는 전형적인 A-B-A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성가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의지를 고백하고 있지만, 감정의 절제를 통해 조용한 비장함을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3/4박자 리듬 특성상 첫 박에 강세를 주며 노래하면 부드럽고도 강건한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선율이나 화음도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리듬을 살려서 너무 느리지 않게만 노래한다면 충분히 그러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B구조의 시작 부분에 명시되어 있듯이 ‘Forte(포르테, 강하게)’의 악상을 살려 노래하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성가의 진행에 효과적인 반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알토 파트에도 주의를 기울여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자칫 소프라노 파트의 선율이 3박자 리듬에 묻힐 수도 있는데, 알토 파트는 주선율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야 할까요? 복음 말씀 안에 나타나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루카 10,38-42)’는 우리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예수님 곁에서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와 정성을 다해 시중드는 마르타의 모습은 ‘말씀과 행동’이라는 신앙의 두 가지 측면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혼자 애써 시중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마르타의 공로가 마리아보다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마리아의 선택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세상이 너무 편리해져서 예수님의 말씀과 해석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모임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라도 예수님 곁에 앉아 그분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분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시중드는 마르타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지만,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살아가는 것 또한 더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부패한 도시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정의를 수호하고자 박쥐가면을 쓰게 된 배트맨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말합니다. “지금의 나를 말해주는 것은 가면 속의 내가 아니라 바로, 내 행동이지!” 우리는 지금의 우리 신앙을 말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0월호, 황인환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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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가 1 번 "나는 믿나이다 “ (Credo)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자신의 첫영성체 또는 세례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은 나중에 자라서 10-11세가 되었을 때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후 주님의 몸을 처음으로 모실 수 있는 예식을 갖게 됩니다. 또 성인이 되어 가톨릭 신앙을 갖기 원한 이들 역시 가톨릭 교리를 배운 후에 가톨릭 세례명을 받으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첫영성체 또는 세례식의 여러 중요한 예식들 중에는 ‘신앙을 고백’하는 예식이 있습니다.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성령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믿을 교리’의 핵심을 믿고 고백하는 예식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 성인들의 통공과 죄의 용서, 그리고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이 그 본질입니다.
가톨릭 역사에 있어서 신앙고백의 교리는 워낙 중요해서, 가톨릭 교회가 공인된 313년(밀라노 칙령) 이후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니체아 공의회(325년)과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의 결과로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확정되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신경을 배워 알고,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지난해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일과 어려운 일을 통해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총에 감사 드리고, 무상으로 받은 새로운 한 해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이 성가의 가사를 통해서 한 해를 살아갈 수 있는 지표를 얻게 됩니다.
첫째,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교회로 부르셨음을 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 때문이며, 이에 나는 “네”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꾸준히 “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한 ‘세상 풍파’를 피해갈 수 없어서
각자 나름대로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성세
때에 드린 맹세’를 기억하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 상속’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이러한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항구하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09년 1월호, 최호영 신부(가톨릭대
성심교정 음악과 교수)]